불완전함의 완전함, 끝나지 않는 질문의 마지막
환상이 내 맘에 드는 것은, (내가 어디 있는가 하는) 현실 인지 속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열에서 이탈한 것도 같고, 대열 속에 일정하게 배치된 것도 같은 이중 공간이 만들어진다.
날개 달린 동물, 그것도 기형적인 날개를 가진 괴물, 아니, 반쪽짜리 인간. / 그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놈은 어딘가 부서지고 결핍된 존재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정성스러운 붓질의 그림들이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흑백 톤이 대부분이다.
한쪽에는 스산하면서도 몽환적인, 긴장과 이완의 심리를 동시에 불러오는 무채색의 영상 작품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요하고 고요한, 그러나 스산한 세상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니 벽에 소설과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이 붙어 있다. 꽤 구체적이고 감정적이다.
글과 그림, 그리고 시간을 머금은 이미지들. 생각과 정서를 최대한, 온전히 전하고자 하는 작가 용선의 욕구가 반영된 듯하다.
영상 작품을 보며 눈으로 읊조렸던 스크립트와 인쇄된 글이 포개어져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다.
단순하지만 마침표를 찍기 어려운 어느날의 이야기이다.
“기형”의 시작은 2024년 여름 프랑스에서 머물던 작가의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용선은 자신의 숙소 곳곳에서 들리던 소리-소음에서 날개 달린 천사, “어딘가 부서진 천사”에 관한 상상-몽상을 시작했고, “기형적인 날개를 가진 어느 천사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호기심과 두려움, 매혹과 거부를 넘나들던 하루하루. “비틀거리며 뛰어가던 그의 걸음걸이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주 넘어지는 모습”을 드러낸 “불완전한 날개”의 천사를 마주한 주인공은
그 존재에게서 “부서지기 쉽고 결핍된 존재인 인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인간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신념과 가치, 진리, 신성함, 나아가 인간을 억누르는 당연시되는 많은 것들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정해 놓은, 세상이 상정한 이상은 바로 그 연약한 존재에게서부터 시작된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찬란하지 않았다. 그토록 빛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2025 테미예술창작센터 12기 입주예술가 결과보고전’ 《용선-기형》(2025)에서 선보인 영상 작업인 <기형>(2025), 동명의 회화 시리즈의 중요한 소재인 천사는 종교화에서 신의 명령을 전하고 미래의 일을 알려주며, 인간을 보호하거나 벌을 주는 모습 등으로 대표되었다. 이후 등장한 파울 클레(Paul Klee)의 작품 속 천사들은 “생성 중인” 존재로 그려지는데 날개를 갖고 있음에도 날 수 있는지 불분명할 정도로 “인간적인 결합과 약점을 그대로 지닌 존재들로 묘사된다.” 완전, 영원, 무한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인간의 “내면에 속한 존재들”로 등장한 천사들은 인간을 숙고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용선의 천사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 놓인다. 특히 용선은 기이하고 작은, 불완전한 왼쪽 날개로 인해 날 수 없는 천사, 기형적 날개의 괴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자꾸 넘어지는
천사―<기형 #1>(2024), <기형 #3>(2025)―를 가정함으로써 나-인간과 닮은 천사이자 내 안에 잠재한 괴물과 같은 낯선 존재를 구현했다.
특히 영상 작품 <기형>에서는 AI로 만들어낸 천사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신비롭지만, 단어 그대로 환상적이면서도 기묘한, 생경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언캐니(uncanny)-두려운 낯섦(Das Unheimliche)의 감흥까지 불러내는 하늘과 물과 나무, 바람, 풀숲과 그림자. 그리고 빛, 어둠.
잘 안다고 여겨졌던 무언가, 그러나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무엇, 이상적 영역에 머물러야만 했던 것이 내 눈앞에 등장했다.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사실 육체의 한계는―내적 한계도― 인간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죽음이라는 필멸의 운명은 모든 인간이 가진 불변하는 근원적 조건이다. 유한성에 대한 고뇌와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일부의 사람들은 초월적 존재를 꿈꾼다.
작가 역시 인간으로서 맞닥뜨린 근원적 문제들에 우울하게 침잠할 때가 있다. 육체라는 조건, 나아가 세속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길 바라는 인간이야말로 날개를 꿈꿀 것이다.
그런 용선에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천사를 쫓는 주인공은 불완전한 인간, 그럼에도 이상을 향해 고군분투하며 생을 견디고 살아가는 인간을 은유한다.
어쩌면 날개 달린 존재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이자 작가를 괴롭혀온 무언가일 수 있다. 그렇기에 천사의 완벽하지 않은 날개는 깨진 꿈일 수도, 무의미한 것임에도 놓지 못하는 허상일 수 있다.
한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 천사가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진 상황은 타자로 격하되거나 격상되어 혐오 혹은 매혹의 대상이 된 누구-무언가를 함축한 것이기도 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볼 수 없어서, 잘 알지 못해서 불안하다. 추격 끝에 눈으로 확인한 “그것 혹은 그 사람”은 “가늘고 왜소한”, 아이는 아니지만 어른에는 도달하지 못한 몸을 가진 존재였다.
은회색의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한다. 손을 뻗으면 사라진다. 다시 그것을 쫓는다.
거울에 비친 천사. 깨진 거울의 파편, “뜨거운 것”이 내면-정신을 관통하는 경험.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는지, 누가 다친 것인지. 다시금 “망각”하고 “도망”치고, 다시 기억하고. 결국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 삶이다. 그러나 살아가야 하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실제로 성스러운 존재와 공포-혐오의 대상―신, 괴물, 이방인, 유령 등―은 “인간 심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균열의 증거들이다.” 이 존재들은 “의식과 무의식, 친숙한 것과 낯선 것”, 동질성과 이질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열을 드러낸다.
따라서 완전하고 성스럽든, 불완전하고 불편함을 유발하든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타자들과의 조우를 통해 실존적 불확실성을 해소해 괴물-낯선 존재가 나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전술했듯 용선은 시공간을 초월해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받았다고 여겨지는 질서, 진리,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확정된 것은 이 세상에 던져져 살아가고 있는 인간-존재들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예술가-인간은 자발적으로 사유를 위한 자극, 원동력을 만들어낸다. 거울 파편에 의해 상처 난 손은 자신을 괴롭히는 조건들을 환기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려 애쓰는 작가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뜨거운 것>(2025)―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고통까지도 필요하다.
고통 없는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를 써도 인간은 자기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질문을 던지고 불완전한 응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흐릿한 실루엣을 붙잡을 뿐이다.
예술도 이러한 고뇌에 명백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예술의 과정은 확정된 결말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중단할 수는 없다. 그것이 꿈이든, 이상이든, 괴로움이든, 슬픔이든, 무엇이든 간에 나와 세상의 작은 부분을 조금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볼품없는 날개일지라도 퍼덕일 수 있다면.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 형
그것, 혹은 그 사람
“젠장,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소리는 주로 어둠이 내리는 저녁 무렵부터 새벽녘까지 나를 괴롭혔다.
특히 새벽의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그야말로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했다.
서걱… 서걱… 스슥, 스슥. 아악… 아아악…
소리에 대한 상상은 점차 의심과 불안을 품고 자라났다.
내 안에서 크고 있던 그 상상 속 괴물은 처음에는 작은 설치류나 포유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새 점점 더 크고 흉포한 존재로 변해갔다.
그 놈의 모습은 결국, 내 머릿속에서 끝없이 증식하는 기괴한 괴물, 그것이었다.
선잠을 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들이 나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예민해진 감각이 결국, 다시 잠을 방해하며 더욱 불안감을 키웠고, 나는 그 무한 악순환 속에서 점점 더 무력해져갔다.
그렇게 천정의 괴물은 나의 삶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놈의 실체가 무엇이든, 나는 반드시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천정을 살펴보던 그날,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천정으로 이어진 길은 거미줄과 잡초로 가득했다.
나는 좁은 틈새를 통해 그곳으로 들어갔다.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기어 올라가다가 천정으로 이어지는 입구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그 입구는 이미 막혀 있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틈새로 흐릿하게 보이는 내부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곳은 앉거나 눕기에도 비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공간은 기이하게도 아늑했다.
거기엔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새의 깃털만이 보였고, 그 외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뭔가 따뜻한 것이 스며 나오는 듯했다.
한낱 먼지와 깃털 속에서도 온기를 느꼈다.
그것은 불안과 따스함이 뒤섞인 기묘한 안식처였다.
깃털뿐이라니…
그럼, 이것이 새였던 걸까? 아니면, 그것이 남긴 흔적일까?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그리고 그날, 평소처럼 천정의 구멍을 통해 내부를 살피던 순간이었다.
눈앞에서 연기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내 시선을 피해 창밖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바로 알았다. 그것은 쥐도, 고양이도, 새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사람이라 믿을 수 없었다.
벌거벗은 뒷모습. 너무나 가늘고 왜소한 그 뒷모습.
아이보다는 성숙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의 몸에는 이르지 못한 몸.
길쭉하고 비쩍 마른 팔과 다리. 성별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것의 형체가 나를 강한 의심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날개’였다. 그 존재의 등에는 날개가 돋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헛것이라 다짐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히 날개였다. 은빛 깃털의 형상이 분명했다.
이것이 바로, 그것과의 첫 만남이었다.
Malformation
That, Or That man
“Damn it, what on earth that sound!”
The sound tortured me from dusk until the early hours of dawn.
Especially in the stillness of dawn, the sound was chilling enough to make my skin crawl.
swish... swish... swoosh, swoosh. Ah... aagh...
My imagination about the sound gradually grew, feeling on suspicion and anxiety.
The monster in my imagination was, at first, nothing more than a small rodent or mammal.
But before I knew it, it had transformed into something big and more ferocious.
Eventually in my head, it became a grotesque monster that multiplied infinitely, it was ‘That’.
There were more days I began to have a light and restless sleep.
The times that I couldn't fall asleep deeply made me increasingly sensitive.
At last, my sensitiveness had disrupted my sleep even more,
intensifying my anxiety level, and became weaker within that endless downward spiral.
Like that, the monster up on my ceiling slowly destroyed my life.
The fact that I don't know what ‘That’ was, not being able to see ‘That’ made me more anxious.
Whatever ‘That’ was, I just had to check with my own eyes.
And the day that I looked up at the ceiling, ‘That’ revealed itself.
The path leading to the ceiling was full of cobwebs and weeds.
I slipped through a narrow gap to get inside. Cautiously crawling up the creaking wooden stairs.
I stopped for a moment at the entrance. The entrance was already blocked.
I couldn't go any further.
Nonetheless, I could peek through the crack and get a glimpse of the inside.
It was a very cramped place where you couldn't sit nor lie down.
Yet, strangely, the tiny space felt cozy.
The only thing I could spot was bird feathers that were scattered on the floor and nothing else.
But within that space, I could feel something warm seeping out.
It was just mere dust and feathers but I could feel the warmth.
It was a strange sanctuary mixed with tension and warmth.
Only feathers...
Then, was ‘That’ a bird? Or just something that ‘That’ had left behind?
Since that day, I stared at the ceiling every night.
What happened up there continued to torture me.
And one day I was peeking through the crack in the ceiling as usual.
While I was looking inside, I saw something that vanished like smoke.
‘That’ looked away and disappeared out the window.
At that moment, I immediately knew what ‘That’ was.
‘That’ was not a rat, a cat nor a bird. ‘That’ was a man.
But no matter how much I looked, I couldn't believe it was human.
A naked back. So thin and fragile.
More mature than a child, yet not quite the body of an adult.
Long, sticklike arms and legs, I didn't have enough time to confirm its gender.
It was too brief.
But in that short moment, the shape of it led me to a powerful suspicion.
It was ‘wings’. The man had wings on its back.
At that moment, I told myself over and over again that I must have imagined it.
But that was definitely wings. I was so sure that it was wings with silver feather.
This was, at last, my first encounter with ‘That’.
기형
파닥… 파닥… 푸드덕…
그것은 어둠이 천천히 내리기 시작하던 저녁 무렵이었다.
그때, 놈은 나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나무 사이를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몸짓은 어딘가 불안정했고, 그 속에서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그에게서 ‘불균형’을 발견했다.
날갯짓이 이상했다.
부자연스럽게 허공을 퍼덕일 뿐,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없는 그 모습에서 무언가 잘못된 점을 알 수 있었다.
날개가… 불완전했다.
정상적인 오른쪽 날개와 달리, 왼쪽 날개는 그 크기가 반쪽이었다.
날개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왜소하고 기괴했다.
놈의 날개는 ‘기형’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비틀거리며 뛰어가던 그의 걸음걸이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주 넘어지는 모습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날개 달린 동물, 그것도 기형적인 날개를 가진 괴물, 아니, 반쪽짜리 인간.
그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놈은 어딘가 부서지고 결핍된 존재였다.
Malformation
flip... flap... flop...
It was at dusk, just as darkness began to settle.
At that moment, ‘That’ was moving swiftly between the trees, completely unaware of my presence.
The movement of ‘That’ was somewhat unstable, and within that moment, I noticed something strange.
From a distance, I detected a certain ‘imbalance’ in it.
The wings flaps were odd.
They just flapped awkwardly and couldn't fly up in the air.
From that, I could tell something was wrong.
The wings... were incomplete.
Unlike the right wing, which looked normal, the ieft wing was only half its size.
It was so small and grotesque, embarrassing to call it a wing.
The wings of ‘That’ were ‘malformed’.
It was then that I finally understood why ‘That’ stumbled when running, why ‘That’ lost its balance and fell so often.
A winged creature, yet one with a malformed wing.
A monster... no, a half-formed human.
‘That’ was not just any monster.
‘That’ was broken and incomplete.
망각
천정에서 들려오는 소리.
소리는 낯설고, 불길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었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은 조여들며, 머릿속은 뿌옇게 아파왔다.
나는 해안가를 걷고 있다.
노을빛이 붉게 물든 해질녘, 나의 발길은 언덕 쪽으로 향하고 있다.
언덕을 오르며 꼭대기에 닿을 즈음, 시야 한편에 희뿌연 물체 하나가 아른거린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것이 ‘날개’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순간, 그 물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돌진해온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나는, 중심을 잃고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거대한 모래사장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사방이 모래뿐인 그곳에는 아득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저 멀리 누군가 등을 보인 채 누워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얼굴을 비롯한 앞면의 절반이 흑에 파묻혀 있는 그 형체는 분명히, 방금 전 언덕 위에서 나를 덮치려 했던 그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는 순간,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바람에 흩날리듯, 그렇게 사라진다.
남은 것은 모래 위에 찍힌 몸의 흔적 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흔적도 곧 바람에 지워지고, 나는 텅 빈 모래사장위에 홀로 남는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아니면 꿈이라고 믿고 싶은 현실이었을까.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혼란스러웠다.
이제 모든 사건이, 기억 속에서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혹은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헛것을 자주 보고,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환청도 날 괴롭혔다.
내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흐르지 않았다.
그저 불규칙적으로, 제멋대로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Oblivion
The sound from the ceiling.
The sound was strange, ominous, unbearably vivid.
my breath got shortened, my chest tightened, and my head ached in a foggy haze.
I am walking along the seashore.
When the sunset stains everything red, my steps are towards the hill.
As I climb the hill and near its peak, a pale, blurry shape flickers at the edge of my vision.
As I approach, I realize it is part of a ‘wing’.
In that moment, as if it had been waiting for me, the shape rushes straight toward me.
Automatically, I turn to run, but lose my balance and tumble down the hill.
When I open my eyes, I am standing in the middle of an endless dessert.
All around me there is nothing but sand and stillness.
Far away, I see someone lying with their back toward me.
The figure’s face, and the entire front half of its body, is buried in the sand.
It is unmistakably the same thing that had just tried to lunge at me on the hill.
As I approach cautiously and reach out my hand, ‘That’ vanishes without a trace.
Vanishing as if it was scattered by the wind, disappeared just like that.
All that remains is the imprint of a body on the sand, and even that soon fades with the breeze, leaving me alone in the empty desert.
Was all of this a dream, or was it a reality I desperately wanted to believe as a dream?
I stood there, blank and bewildered, like a person who had lost their mind.
The fact that everything felt as though it had happened long ago, buried in my memory, or suspecting it was a dream of my own imagination has tortured me endlessly.
I often saw hallucinations, I fell into delusions. I would even hear things. They were torturing me. My memory no longer flowed in step with time.
It drifted, irregular and aimless, as if floating wherever it pleased.
And yet the fact that all of this had happened within only a few days drove me even closer to madness.
뜨거운 것
꽤 멀리까지 달렸다.
이제는 지나온 길을 되짚어가기조차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나는 계속 놈을 쫓았다.
놈은 잘 달리지 못한다, 어차피 놈은 날 수 없다.
기형이다.
쫓기만 하면 된다.
놈을 잡는다면 마침내 난, 이 혼돈을 끝낼 수 있다.
놈은 비틀거리며 불안하게 달렸다.
그러나 그의 발은 중력을 거스르는 듯 가볍고, 땅에 닿는 순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돌과 돌 사이, 바위와 바위 사이를 가볍게 뛰어 올라 달아났다.
속도가 빠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이지 않고도 놈은 점점 멀어졌다.
그의 비대칭적인 날개는 불완전하게 퍼덕이며, 순간순간 공중으로 놈을 밀어 올렸다.
하지만 해가 저물자, 나는 점점 어두운 시야 속에서 그의 모습을 놓치게 되었다.
어둠 속에 점점 사라지는 놈을 뒤로한 채, 나는 추격을 멈췄다.
그의 기척을 다시 느낀 것은 다음 날, 늦은 새벽이었다.
놈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부엌 옆 좁은 복도를 지나면, 계단 아래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몸을 구부려야 겨우 어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곳.
그곳에서, 달빛 속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것.
가는 빛줄기 속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은회색 깃털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재빠르게 그의 날개를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놈은 내 기척을 눈치 챘고, 한순간에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져 있던 집의 모든 형상은 이제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눈은 어둠에 더욱 취약했다.
어두운 곳에서 나는, 순간순간 거울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쫓아야만 했다.
나는 바닥을 더듬어 손에 잡히는 대로 거울을 향해 던졌다.
그때, 거울이 파열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
그 소리는 놈을 자극했는지, 놈은 한 번도 듣지 못한 괴성을 내지르며 울부짖었다.
"아악... 끼아악... 까악... 꺄악..."
괴성은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그 순간, 나와 놈, 둘만의 팽팽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재빨리 바닥에 흩어진 거울 조각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 유리조각을 쥔 손으로 놈의 위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흘러내리는 땀은 내 시야를 방해했고, 유리를 쥔 손에서는 무엇인가 끈적한 것이 느껴졌다.
긴장 속에서 유리조각을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비슷한 온도의 그것은 땀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침묵을 깨는 그 순간, 번쩍이는 놈의 눈과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미친 듯이 팔을 휘두르며 뛰쳐나갔다.
다행히 내 손에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유리조각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바로 그때, 섬뜩한 것이 지나가 ... 소름.
살갗이 뜨겁게 타는 듯한 미끈한 느낌.
그 순간, 찰나. 찰나의 깊이.
그 깊이는 너무나 짧았다.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것이 아랫배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
그 느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The Heated
I ran as far as I could.
I had reached a point where even retracing my steps back was nearly impossible.
I kept chasing ‘That’.
‘That’ was not a great runner, and after all ‘That’ could not fly.
‘That’ was malformed.
All I had to do was to chase.
If I could catch ‘That’, at last I could end this chaos.
‘That’ stumbled as it ran, unsteady.
Yet its steps seemed to defy gravity, light and fleeting, barely touching the ground.
Between stones and between rocks, it leapt away effortlessly.
Even though its speed was not fast enough, it kept pulling farther and farther away from me.
The asymmetrical wings flapped imperfectly, momentarily fleeting ‘That’ into the air.
But as the sun set, I began to lose sight of ‘That’ in the dark.
I stopped the chase leaving behind it vanishing into the darkness.
I sensed its presence again the following dawn.
It was spotted in an unexpected place.
Past the narrow corridor beside the kitchen, under the stairs, there was a small space.
So cramped an adult would have to crouch to enter.
There, faintly visible in the moonlight, ‘That’.
Silver-gray feathers shimmering softly in the narrow beam of light caught my eyes.
I reached out with both hands, trying to snatch the wings.
But ‘That’ sensed my presence and in all of a sudden, vanished toward the kitchen.
Inside the darkness, I lost my way.
The house I had lived in for so many years suddenly felt unfamiliar.
And my eyes became more vulnerable in the dark.
In that dark space, I could only chase its fleeting reflection in the mirrors.
I fumbled across the floor, throwing whatever I could grasp toward the mirrors.
Then, with a sharp cracking sound, a mirror shattered on the floor.
Perhaps the sound disturbed ‘That’, since it let out a scream unlike anything I had ever heard before.
“AHH... AGHHH... SCREEEEK...SCREEEEEK...”
The squeal tore through the cold air.
And then, at that moment, the silence came, for just both of us.
I quickly grabbed a piece of the broken mirror from the floor.
With my hand holding the piece of glass tightly, I moved back and forth searching for ‘That’.
The pouring sweat went into my eyes, blurring my vision and I could feel something sticky spread across my palm.
Feeling the heat, I gripped the glass harder.
I couldn't tell if the warm stickiness was from my sweat, or something else.
Then, breaking the silence, flashing eyes of ‘That’ met mine.
It was just an instant moment.
In that second, I swung my arm wildly, as I ran forward.
Fortunately, in my hand there was a piece of sharp glass.
I closed my eyes shut tight, swirling the glass with all my might.
And then something creepy brushed past... chills.
A slimy sensation as if the skin is burning.
That moment, that second. The value of this moment.
The shallow depth.
Something so hot like a fire started to spread from my lower belly through the whole body.
Slowly but undoubtedly, it began to swaddle me.
!..
The feeling. The moment I could feel this was only just a brief seco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