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남자 외" (2025. 6. 21 - 8. 2 / LeoGallery in Sejong)
이 번 전시 제목 <자전거 타는 남자 외>는 아래의 작품 <우화, 자전거 타는 남자 episode-4>에서 가져왔다.
<우화, 자전거 타는 남자 episode-4>는 2019년에 제작한 10여분 분량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이다. 첫 장면은 까만 화면으로부터이다. 세찬 바람소리에 이어지는 흑백 풍경, 사진 한 장 같은 기울어진 사선구도, 일몰의 시간 햇빛 잔상이 남아있는 하늘이 보이고 가까이는 진흙과 돌덩이들이 보인다. 이 처음 몇 초간의 시간은 작품 속으로 안내하는 최소의 조건이고 사건의 시작처럼 보이는데 마치 생명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이후 미지의 삶을 예시하는 듯하다. “내가 들은 것은 그랬다”에서 시작하는 텍스트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반복되며 영상작품은 끝을 맺는다. 영상 편집의 구분은 갯벌장면에서부터 하늘_햇빛과 구름, 물결, 바람과 숲, 물속, 다시 땅_갯벌 장면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성과 단락을 굳이 상정하지 않더라도 영상에는 천지창조부터 생로병사 및 인간 존재와 삶의 숙명에 대한 저항과 성찰, 반항과 항복, 순종이 ‘빛’가운데 지속되고 있다. 더불어 예술가의 사명이나 초상 같은 자아에 대한 질문이 여운처럼 떠돈다. `우화_자전거 타는 남자`는 이렇게 던져진 삶의 이면을 향한 상징과 은유, 서사와 사유로 가득하다.
작가는 그의 삶의 위치에서 미적대상을 포착하고 형상화하기에 가장 알맞은 매체와 방법을 선택한다. 작가의 좌표에서 발견하는 어떤 미적 영감의 순간들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주제나 메시지를 다루게 된다. 이로써 작가가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미적 감각과 세계관에 따른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다. 이런 양상은 다원주의시대 이후 동시대미술 작가들에게 나타나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용선 작가의 경우 각 매체별 완성도와 감각의 밀도가 매우 높은 것이 차이이고 특성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펜 뜨개질> 작품은 스웨터를 그린 그림이다. 직물의 따뜻한 촉감과 온도 그리고 신체_몸의 부재와 시간성까지 소환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경우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연상하는 드로잉기법을 채택한다.
<방> 작품은 비누덩어리를 조각하여 수건이나 방석, 신발과 면T 등 실제 사물과 같은 질감과 크기로 재현한 작품이다. 닳아 없어질 재료와 소재의 만남은 우연 같지만 필연처럼 맞춤한 것이다. 비누라는 향을 가진 재료를 채택한 후, 일상의 어느 공간을 차지하는 사물_빨래를 재현하고 그것들이 품고 있을 특정한 후각의 공간뿐만 아니라 삶의 다면적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이럴 때 채택된 조형방법은 조각을 기본으로 입체화하고 마지막에는 설치작품으로 연출하는 식이다.
식물의 잎을 수집하고 바느질로 꿰맨 후 재처리한 오브제 작품<잎>, 영상과 사진 및 설치로 표현하는 <유사한 시선>, <작은 방> 등은 작가가 처한 상황 또는 사물과 현상을 발견한 그때, 그 미적 대상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예술적 감각으로 치유하고 보존, 변태시키며 작품으로 재생한다. 그 사유_시선의 처음은 사물의 이면을 향한 관심에서 시작되지만, 지금의 자신과 함께하는 사태를 동시에 의심하는 것을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사물이 의미를 갖는 대상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과정으로써 애정의 투사이기도 하다. 그가 많은 장르를 넘나들고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가운데 애정을 투사하는 중심주제는 세상_사물의 존재에 관한 시간성이다. 사물을 새롭게 대상화하는 가운데 그는 그 존재의 불완전함을 시간성으로 감지하며 어쩔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그가 채집하거나 선택한 사물들, 이를테면 식물 잎이나 비누, 빛과 공간 나아가 순간들의 이미지 등은 시간성에 의존하는 존재의 숙명을 강력하게 발산한다. 이는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전체, 곧 나의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의 고백으로까지 나아간다. 예술적 감각의 차원을 단정할 수 없지만 그가 질문하는 조형적 수법은 존재의 질문인 동시에 사물의 시간적 숙명에 대한 저항으로도 느껴지기에 그의 조형적 문법은 반어법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성의 사유로 최종에 완성되는 비늘_허물_흔적 같은 그의 작품은 세상의 통념과 관념에 대하여 아름답게 거부하는 이의제기로써 예술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한다. 숙명과 운명에 대한 복종과 자백 또는 그에 대한 의심과 반항의 존재의식이고 이것은 도리어 삶의 수용과 감사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다면적인 순간의 이면과 이면의 순간을 아름답게 승화하는 의지로써 작가의 세계는 구성되고 있다.
미적 대상화 이전의 사물_세계_삶은 실제이기는 하지만 예술작품으로서의 실재는 아니다. 작가의 존재는 작품을 실재하게 할 때와 동시에 성립한다.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 산다는 것, 아름답게 소통한다는 것 그 사이에 들어찬 무한한 이면을 상상하게 하는 세계로써 용선작가와 작품은 독립하고 있다.
레오갤러리 대표 윤후영